철학적상황들을 시작하면서
중세철학을 연구한 요셉 피퍼는 뉴욕에서 유럽으로 돌아가는 배에서 다른 승객들이 뉴욕 여행 중 사소한 것들을 보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과 전날 밤 배에서 아무것도 볼 것이 없다고 말한 것을 비판하며 인간의 보는 능력의 쇠퇴를 말한다.
인간의 보는 능력이 쇠퇴하고 있다. 문화와 교육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요즘 이런 사실을 반복적으록 경험할 것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것은 인간 눈의 생리적 감도가 아니라, 눈으로 볼 수 있는 실재를 정말로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영적인 능력이다. 눈앞에 분명히 존재하는 것들을 실제로 모두 본 인간은 이제까지 확실히 없었다. 실체적인 면도 포함해서 세계는 불가해한 것이다. 대양에서 부풀어 올랐다 사그라지는 물결의 숱한 형태와 색조들은 누가 모두 완벽하게 인식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인식은 가능하며, 어떤 한계선을 확실하게 넘어버리면 영적인 존재로서의 온전함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 그런데 요즘 우리는 이 한계선에 도달해 있는 것 같다. (요셉 피퍼, ‘여가와 경신’, 박윤정 역, 파이돈, 2019, 17)
미주에서 유럽을 배로 오가던 시대에 ‘인간의 보는 능력의 쇠퇴’가 오늘날 우리에게도 문제가 될까? 우선, 피퍼가 말하는 인간의 영적인 능력을 인간의 인식하는 능력 일반으로 생각한다면, 어느 정도는 그 지적이 현재에도 유효할 것이다. (물론 피퍼가 영성적인 능력을 인식 능력 일반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아니다.)
근대 이전 철학의 인식론적 입장에서 인간의 인식에는 인식을 하려는 의도와 인식 능력인 지성을 필요로 한다. 다시 말해 인식을 하려면 적어도 대상을 인식하려는 의도와 능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피퍼가 지적하는 것은 일상적인 것들을 보려하지 않는 인식 의도의 결여와 의도가 있어도 그 대상을 인식하지 못하는 인식 능력의 부족이다. 이런 피퍼의 지적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어 보인다.
오늘날 다양한 상황이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다. 당선되기 위해 후보들은 서로를 도덕적으로 비난한다. 코비드19가 창궐한지 2년이 지난 지금, 안티백서들은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며 음모론을 제기한다. 산업의 많은 부분이 자동화되자, 노동의 고귀함이 사라진다. 새로운 종류의 자산이 등장하고, 이에 대한 정의를 요구한다. 삶의 모든 것 데이터로 기록되고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 지금 데이터의 사용에 대한 권리가 새로운 문제로 제기된다. 독특한 메시지를 담은 드라마와 영화, 음악 등 예술이 예전과 달리 매시간 쏟아져 나오고, 해석을 요구한다.
철학적상황들은 문제를 인식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철학적 인식 능력을 제공하려는 목적으로 만든 매체이다. 검색으로든 서핑으로든 이 홈페이지를 방문한 사람은 적어도 앞서 기술한 오늘날 우리가 의식해야할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고 싶은 사람일 것이다. 우리의 독자는 주변 상황들에 대한 인식 의도는 갖추고 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인식 능력일 것이다.
물론 방문자들은 이미 자신만의 인식 능력을 갖추고 있다. 앞서 기술한 상황들을 해석하는 방법은 다양하고, 독자 자신이 기존에 갖고 있는 사회학적 지식으로, 경제적 지식으로, 정치적 지식으로 이미 잘 해석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철학적상황들’은 우리가 처한 상황을 철학적으로 해석하려는 의도를 충족할 수 있는, 다시 말해 철학적인 인식 능력을 키울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고자 한다.
철학적상황들은 철학을 전공한 필자들이 모여 글을 쓰는 매체이다. 각자가 공부한 방향에서 특정한 상황이나 대상을 바라보고 기술하는 글이 주를 이룰 것이다. 이에 더해 철학적 사고를 위한 기초적인 내용들도 올라올 것이다. 물론, 지금 말한 것들은 이 매체를 시작하면서 계획한 것이다. 이 모든 계획은 실행되면서 상황에 맞게 변경될 것이다. 앞으로 생길 변화는 지금 예측할 수 없기에 철학적상황들을 만들어 가면서 종종 글로 알려야 할 듯하다.